해가 지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고 눈만 드러나 있었습니다. 어떤 가면은 웃고 있었고 어떤 가면은 분노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가면은 인간이 아닌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이 장면은 일본일 수도 있었고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일 수도 있었습니다.오늘은 귀신분장을 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축제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귀신 분장을 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축제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면과 귀신이라는 비슷한 장치를 사용해 왔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과 유럽의 가면 축제는 겉모습만 닮았을 뿐 그 의미와 목적은 크게 달랐습니다. 같은 귀신의 얼굴을 쓰고 있어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축제가 향하는 방향은 전혀 달랐습니다.

1. 일본의 귀신은 함께 존재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일본의 전통 축제에 등장하는 귀신은 서양에서 말하는 유령이나 악마와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귀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무섭고 위협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이빨과 강한 몸을 지닌 모습은 분명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본 문화에서 귀신은 자연재해나 질병 불운과 같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을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든 결과였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가면 축제는 귀신을 완전히 없애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귀신을 달래거나 잠시 밖으로 내보내는 의식에 가까웠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세츠분 행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귀신 가면을 쓴 인물에게 콩을 던지며 불운은 밖으로 나가고 복은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원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귀신이 영원히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이었습니다. 귀신은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귀신 분장 행진은 공포보다는 의례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아이들이 울기는 했지만 그 울음은 실제 공포라기보다는 연극을 보는 감정에 가까웠습니다.
일본에서 귀신은 적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할 이웃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2. 유럽의 가면은 억눌린 인간의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유럽의 전통 가면 축제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출발했습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여러 지역에서는 겨울이 끝나갈 무렵 괴물 같은 가면을 쓰고 거리 행진을 하는 축제가 이어져 왔습니다.
이 가면들은 귀신이라기보다는 괴물이나 악마 혹은 과장된 인간의 얼굴에 가까웠습니다. 이빨은 지나치게 크게 표현되었고 표정은 조롱하거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가면이 등장한 이유는 유럽 사회의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오랜 봉건 사회와 종교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자유롭게 드러내기 어려웠습니다. 분노와 불만 계급 간 갈등은 억눌린 채 쌓여 갔습니다.
가면은 이러한 억눌린 감정을 한꺼번에 분출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가면을 쓰는 순간 사람들은 신분에서 벗어났습니다. 농부는 귀족을 흉내 냈고 시민은 권력을 조롱했습니다. 평소라면 허용되지 않았을 행동들이 축제 기간 동안만큼은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가면 행진은 질서를 잠시 무너뜨리는 성격을 띠었습니다. 소음이 커지고 술이 넘쳤으며 때로는 거칠고 위태로운 장면도 등장했습니다. 이 축제에서 가면은 귀신을 쫓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안에 숨겨진 귀신 같은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도구였습니다.
3. 같은 가면이 다른 목적을 가지게 된 이유였습니다
일본과 유럽의 가면 축제를 나란히 놓고 보면 두 문화가 귀신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일본은 귀신을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힘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귀신은 자연처럼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었고 무섭지만 공존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반대로 유럽은 귀신을 인간 내부에서 찾았습니다. 억눌린 욕망과 분노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가면을 통해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차이로 인해 일본의 가면 행진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의식이 되었고 유럽의 가면 행진은 질서를 잠시 해체하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같은 귀신 분장이라도 하나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고 다른 하나는 사회를 흔들기 위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가면 축제는 가족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의 가면 축제는 성인과 공동체 중심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결국 가면을 쓰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맨얼굴로는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을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두려움과 분노 불안과 욕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식까지 모두 쉽게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었습니다.
가면은 이러한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귀신의 얼굴을 빌려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변해도 이러한 축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그 본질은 유지되었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귀신 분장을 하고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웃기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며 낯설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인간이 오래전부터 품어 온 질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해 왔는지 그리고 그 두려움을 어떻게 함께 견뎌 왔는지를 가면 축제는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가면은 혼자라면 공포가 되지만 함께라면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